♧ 불혹의 수채화 ♧< BR>

세월이 물들인
나만의 수채화
얌전히 물 드려진
불혹의 나이...

세월에게 아부 한 적 없는데,
곱게 물 드려진 수채화처럼
세월이 나에게 남겨준
그림이 아름답다.

포장 하지 않은 미소가
예뻐 보였을까..
세월을 의식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내가
예뻐 보였을까...

예쁘게 그려 달라고
부탁 한적 없는데
커다란 눈가에

밉지 않게 그려진 잔주름
지나온 세월 만큼이나
아름답게 물들어
지난날들을 돌아본다.

세월이 주고 간 서글픔은
잠시 아주 잠깐만 생각 하련다.
불혹의 나이테가 그려진

수채화처럼 70%의 만족을
100% 의 의미를 담아
환하게 마음 비워 웃어본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욕심을
세월에게 부탁하고 싶다.

미소로 아부해서
없는 애교 부려서라도
예쁘게 웃는 나의 입가에
깊게 그려지는 실선을
조금만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려 달라고
나만의 욕심을
이제는 부탁 하고 싶다.

하늘을 쳐다본 지가 얼마 만인가
땅을 내려다본 지도 꽤 오래인데
하루해 저물기가 힘이 들고
저녁이 쉽게 오지 않는 날엔
숨소리도 맞바람에 부대껴 가파라만
느껴진다.

욕심 없는 하루건만
세상을, 삶을 몽땅 놓아버리고
모든 걸 잊고 싶은 날엔
더딘 밤은 몹시도 깊고
그 밤의 어둠은 길고도 긴 그림자...

이런 밤엔 꿈도 하얗도록 허망하여라
하루 만큼 생은 짧아져 가는데
파고드는 상념은
끝도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네
아, 나는 여태껏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파문을 넘어 파도를 치던 날엔
물속에서 그 하루를 살았고
채 몸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내일을 걸어야 했던
중년의 하루, 또 다른 하루에

녹지 못하고 얼어버린 가슴앓이가
고드름처럼 맺힌 창문 너머로
뽀얀 아침이 다시
숨을 가다듬고 찾아오면
따뜻한 햇살이여, 새삼 반가운데

등 뒤에서 날마다 부르는
금쪽 같은 품 안에 자식을
이제는, 이제는 올려다보며
점점 셀 수 없는
내 흰 머리카락은 과연 몇 개나 될까
아, 오늘은 무엇이 마냥 그리워진다.
운영자 산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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