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는길에 살짝다녀가는

중년을 위한 창백한 기도

효정이집 2008. 7. 1. 08:25
    
    중년을 위한 창백한 기도
    
    
    사방이 벽이었다
    벽 안에는 여전히 아버지 어머니의 나무가 자라고 
    아침이면 갓난아이의 울음처럼 새가 날고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끊어진 
    나의 탯줄도 벽 이전의 벽에서 걸어나와
    사랑하지 않는 것들과 오입을 하며 서서히
    그러나 핑계를 통한 성장을 거듭했다
    성장한다는 것은 벽에 갇힌다는 사실을
    왜 나는 몰랐을까,
    중년에 와서야 갇힌 포로가 되고 
    내 삶의 벽이 싸늘하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중년은 중천이며 천국과 지옥의 갈림이다
    나는 자유를 갈망하며 벽에 그려왔던 
    내 생의 그림에다 침을 뱉고 지울 것이다
    벽 너머에는 또 다른 벽이 있을 뿐이다
    무시하며 살아왔던 내 영혼 앞에 팽팽히
    연결되어 있는 아집의 탯줄을 물어 뜯어내고
    솟구치는 피와 함께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쳐들었다 그때 하늘을 처음 보았다
    삶의 벽에는 뚜껑이 없다는 걸 처음 알았다
    벽은 바람으로 바뀌고
    하늘에는 생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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